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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5. 01:13

Audiobook ~ 01:07:11, Translated on 4 April, 2018


 우리가 뭘 잃었는지에 대해 한탄하는 건 여기까지 하자. 모든 것이 시작되기 그 전, 우리가 Rough Trade와 계약했을때 우리가 어떤 기회를 얻었는지 깨닫기도 전에 리버틴즈는 NME*의 표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Rough Trade와의 새로운 계약은 우리에게 언론 담당자 역할을 했던 호랑이 토니를 포함한 새로운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는 토니 린킨을 잘 아는 어머니가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고 항상 수트에 백팩을 맸었다. 난 그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 싱글이 라디오에서 틀어질 즈음에 우리가 NME 표지를 장식할 수 있게 부던한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능한 좋은 말로 옮겨보면, '이번 수요일이 지나면 있잖아, 모든게 많이 달라질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 표지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너희들은 엄청, 엄청나게 유명해질거라구. 전에도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있어. 스스로 좀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거야.'

 우리 스스로 무슨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단 말인가? 웨스트 엔드에서는 화요일에 NME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전날 전국으로 미리 배포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화요일이 되자 나와 피터는 베스널 그린의 집에 다시 모였다. 수트와 부츠를 신고, 선글라스를 쓰고 엄청나게 멋진 척을 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토튼햄 코트 로드 역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앞 표지에는 우리가 있었고 the Astoria* 맞은편의 작은 뉴스스탠드에 비치되어 있었다. 우린 몇 개 달라고 요청했고 카운터 뒤의 여성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피터는 아주 느리게 그녀의 손에서 잔돈을 받았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저 우릴 보고 한 번 웃고는 다음 손님을 맞이했다. 우린 하루종일 걸어다니며 여기저기서 NME 잡지를 손에 쥐었다. 전부 돌아다녔지만 그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주에도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착각이었다. 좀 웃기긴 하지만 그럼에도 착각이었다.

 난 우리가 뭘 예상했던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번 변화가 시작되자, 그 변화는 크고 빠르게 일어났다. 우린 무대에 올라가 연주하고 내려오면서 어떤 미국에서 온 남자가 우리에게 말한대로. 그리고 그 곳은 고작 한 달 전에 우리가 NME 잡지를 사러 갔던 곳이었다. 우린 The Vines*의 서포트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가 그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헤드에 걸고 공연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끌어내려지고 우리가 최상단에 이름을 걸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우리에게 변화가 오고 있다고 느꼈다. 정말 그 누구도, 단 한사람도 티켓을 환불하지 않았고 우린 우릴 보러 온 사람들을 위해 무대로 나갔다. 무대로 올라가 연주했다. 피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Rough Trade를 위해 버나드 버틀러*와 함께 첫 싱글을 녹음했던 때가 기억난다. 처음 시작할때, 피터는 버나드에게 거의 홀려있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를 거의 받들어 모셨다. 피터가 NME에 편지를 보내던 어린 시절에 버나드는 표지를 장식한 스타였고 Suede*의 일부로서 일정 기간 그들의 음악적 범위를 바꾸는 데 도움을 줬던 인물이었다. Rough Trade가 그를 데리고 왔을때를 기억하는데 그는 컨버스를 신고 큰 파카를 입고 있었다. 내 환심을 사게 만들었던 굉장히 버나드 버틀러스러운 모습이었다. 난 가끔 사람들에게 내 인식대로 보고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마치 내 머릿속에 그들의 사진을 들고 있는 것처럼. 길에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는 팬이나 나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난 언제나 내가 그들이 원하는 인상으로 남겨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버나드는 내가 그에게 바라는 모습 그대로였다. 아무 멋진, 솜씨가 좋은 연주자였다. 그는 무척 체계적이고 약간 학교 선생님처럼 프로듀싱을 진행했고 그런 점이 나는 마음에 들었었다. 그는 속으로 기대하던대로 가르쳐주는 멋지게 늘어뜨린 머리를 가진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그 처음에는 우리에게 그런 식의 어프로치가 필요하기도 했다. 모든 것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후에 'Don't Look Back Into The Sun*'을 녹음할때도 함께했는데 그 땐 피터의 관심이 좀 사그라들었을 때였다. 내 생각에 피터는 그런 권위적인 접근 방식에 싫증이 났던 것 같다. 피터는 스스로 그런 방식에 자신이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는 조금 못되게 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가 크랙이니 헤로인이니 하는 것들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계속해서 내 신경을 긁었고 난 스튜디오에서의 시간을 완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 노력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항상 초조해했다. 어떻게든 그 두번째 세션에서 우린 전부 끌어냈고, 버나드와 함께 완성시켰다. 피터가 완성하러 나타나지 않아 그가 해야했던 기타파트와 백보컬에 대한 감사를 전달하고 싶다. 우린 한 두개 정도의 별로 였던 보컬 녹음을 편집했고 괜찮게 연결하고 또 수정했다. 사실 우리가 해야하는 만큼보다 더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세션에서 피터는 정말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는 어느 시점부터 스튜디오에 오지 않았다. 우린 오후 2시쯤 와서 새벽 2시까지 스튜디오에 머물렀다. 우리 눈이 가끔 문쪽으로 미끄러졌었지만 거기서 보낸 2주간 그 문을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Up the Bracket 그리고 우리의 두번째 앨범인 The Libertines의 프로듀싱을 진행한 믹 존스는 마치 갱단의 일부가 된 듯이 바로 일을 시작하게 했던 사람이었다. 모두가 그를 따랐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음악적인 영웅이었는데 사실 난 그가 만든 음악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난 그에게 Guns of Brixton*의 믹싱을 좀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 사람 중 하나였다. 내 생각에 그의 새 작업물은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포잉' 거리는 노이즈를 없애야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그의 명예를 내려놓았지만, 밴드의 나머지 사람들은 나에게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각 날의 세션 마지막에 The Clash에 대한 특별 강의를 했다. 녹음 후에 앉아서 쉬면서 누군가 슈퍼에 들러 맥주를 몇 개 사들고와서 카탈로그를 보면서 여러 조언을  말해줬다. 난 그 때를 굉장히 즐겼었다. 그 세션에서 나에게 가장 오래 남아있는 기억 중 하나는 유리 너머로 믹이 앉아서 그의 펜과 메모를 들고 심각하게 있다가 녹음을 시작하자고 하는 모습이다. 그 외에는 유명한 그의 춤추는 모습정도. 두 이미지 모두 나를 약간 안심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 NME, 영국의 음악 저널, 1952년부터 발행되기 시작

* the Astoria, 런던의 Charing Cross Road에 있는 공연장

* The Vines, 1994년에 시드니에서 결성된 호주의 락밴드

* Bernard Butler, 1970년생의 뮤지션, 작곡가, 프로듀서, Suede의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음

* Suede, 1989년 런던에서 결성된 얼터너티브 락밴드

* The Libertines - Don't Look Back Into The Sun, 2004

* The Clash - Guns of Brixton,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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