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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2. 06:00

Audiobook ~ 03:53:30, Translated on 22 April, 2019

 

  당신이 만약 갑판에서 뛰어내리거나, 혹은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하게 된다면 아래로 가라앉거나 해변을 찾아 나아가려 할 것이다. 2009 1, LA 공항에 착륙하여 출렁이는 물에 나 자신을 잃는 대신 건조한 황무지를 통해 내 죄들을 씻어내려 한 적이 있었다. 난 많은 이목을 끌지 않는 정도의 솔로 공연을 기획하고 Glasvegas의 미국 투어 서포트 밴드로 돌아다녔다. DPT가 해체된 이후 처음 관객 앞에 서는 거였다. 나 스스로를 질질 끌고 올라가 내 안의 악마와 대면했다. 그런데 출국하는 줄에 서있는 나는 당장이라도 공포에 떨며 마지막 수단을 쓰려는 듯한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난 비자가 없었다. 서포트 투어를 완료하기 위해 내 복잡한 이야기를 딱딱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공항직원에게 말해야 했다. 웨스트 코스트에서 많은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로드 여행을 하는 거라는 모호한 이야기. 난 비행기에서 이름과 목적지를 가짜로 써서 냈다. 양식을 채우는 동안 땀이 나는 걸 느끼며 동시에 목 주변에 입국장에 켜져 있는 에어컨 바람 같은 서늘함을 느꼈다. 마침내 서류를 제출하고 그들이 나를 확인하려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가득한 인파를 지나갔다. 난 옆으로 끌어당겨져 어떤 방에 남겨졌다. 먼저 기타를 보냈음에도 나는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마 내가 적은 문장은 대서양 너머에 있을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을 방문한다는 글자들이었고, 좋은 대화는 제쳐두고 그들의 인중을 찌뿌리게 하며 그들의 노트에 무언가를 급히 적게 만들었다. 나는 겁에 질려 뻣뻣하게 굳었고,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방에서 사라졌고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돌아와 구글링한 걸 출력해서 들고 왔다. 어두운 스테이지인지 어딘지에서 내가 웃으며 공연장을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내 운명을 봉인시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다음 비행기를 예약하게 되었다.

 

  그들이 날 가게 두었어도 나은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거였다. 그날 밤 LA의 트루바두르 공연장에 오르는 건 내게 교수대로 향하는 사람의 심정과 같았다. 난 답을 도출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내게는 몇 년이고 몇 년이고 연주해온 셋리스트가 있었고 내 흐릿한 정신 상태에서도 내 손가락은 믿음직스럽게 프렛 위에서 복잡한 패턴들을 잡아낼 것이었다. 그리고 내 입은 노래에 필요한 필수적인 단어들의 형태를 만들어낼 것이었다. 여전히 내게 매달려 있는 의문이 있었다. 난 씨발 거기까지 가서 뭘 한 거지? 쇠귀에 경 읽기였다. 달가울 만한 상황임에도 나는 스스로 뭔가 증명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도전한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면 길을 이탈하고 온통 아수라장이 될 거였기 때문이다. 나는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고, 희망을 품었지만 두려웠다. 다시 미카엘 갬본의 질문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목적이 무엇인가?'

 

  내 목적은 무엇이었던 것일까? Glasvegas는 날 LA에 두고 갔으며 우리는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내가 그들의 버스에서 열렸던 파티에 찬물을 끼얹은 적이 있었다 해도 말이다. 이제 내겐 할 일이 없었다. Glasvegas는 가버렸고 난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대신 내 소중한 친구 크리스 멕코멕과 만나기로 했다. 크리스는 사람들을 알았다. 실제로 그는 모두를 아는 듯 했다. 그는 90년대 후반에 캄덴의 아이콘이었던 밴드, 3 Colours Red의 전 기타리스트였다. 우리는 리버틴즈 후기에 갔던 일본에서 만나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의 삐죽삐죽한 머리와 가죽 자켓, 조르디 억양, 과한 양의 타투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약 복용량과 주량의 소유자였다. 우리는 정말 그 즉시 친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상업적으로 사용될 노래를 쓰려 하고 있었고, 내겐 예산이 필요했다 하지만 정말 가장 원한 게 있었다. 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했다. 크리스는 몇 개 만남을 주선해주었는데, 난 왜 그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했을까? 그는 마을로 돌아갔을 것이고 모든 게 또 다른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밤 늦게 거리에 있어도 얼어 죽지는 않는다. 그 생각은 내게 상업 지구에서 술에 취하고, 또 취하는 밤을 보내게 만들었다.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정신조차 맑지 않았다. 하지만 런던과 파리에서의 일시적인 불편함을 겪은 것 덕에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고, 생각 없이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길을 잃던지, 어디로 가야 우리 숙소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해도 우리가 얼어 죽을 일은 없었다. 메이헴 중간쯤 우리는 터를 잡았다. 인상이 강한 곳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나서 하 마 슈퍼스타가 찾아왔다.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양 환영했다. 주된 이유는 그가 실제로 나이 많은 친구였기에. 그는 그가 가진 비디오 카메라를 세팅했다. 그는 쇼를 찍어보고 싶다고 했다. 인터넷 여기저기 많은 곳에 있을 거다. 만약 당신이 Two British Dudes라는 걸 찾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대도 별로 불쾌해하진 않을 것이다. 좀 쓰레기 같은 거였다. 내가 여러 명이 나와 연기를 하는 짧은 영상이었다. 흥미를 가질 만한 포인트는 그걸 보며 우리가 얼마나 극심하게 먹고 마셨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거다. 그 영상을 찍을 때 나는 이미 이틀을 깨있었던 상태였고, 유령처럼 창백하며 지저분한 이빨을 하고 있었다. 우리를 약속 장소에 데려가기 위해 매일 아침 우리를 찾아 숙소에 방문했었을 두 여자분이 어땠을지는 신만이 아실 거였다. 우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LA에서 해야 할 별도의 홍보 일정은 없었다. 우리는 도시를 빠져 나왔고, 두 엉성한 영국인은 마지막 출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고 그 다음에 찾아온 건 맨하탄 위를 날고 있는 와중에 바짝 말라버린 입을 느끼는 것이었다. 내리기 전까지 술을 입에 댈만한 시간은 없었다. 눈이 우리 코트와 머리카락에 매달렸고 바람에 몸이 밀리는 와중에도 택시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우리는 더 많은 스케쥴을 위해 여기에 잇는 거였지만 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편한 변명이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든지. 할렘에서 뜬 눈으로 뉴욕의 강풍을 뚫고, 버락 오바마의 취임 방송을 보려 즉시 술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앉아 그가 연설 중 말실수를 하는 것을 보며 나는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보는게 달가웠다. 비록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라도. 난 바를 둘러보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분명 그가 부시의 시절에 변색된 것들을 청소하고 그들을 구할 거라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뉴욕의 광고주들은 LA보다 더 지독했다. 난 그들의 직업이 물론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 사무실에서 한 시간 남짓을 보내자마자 난 생각했다. 못해먹겠어. 이건 끔찍한 짓이야. 실제로 살기 위해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많은 규율이 필요한 법이다. 내겐 맞지 않았다. 스펙을 위해 쓰고 끔찍한 삽입곡을 입으로만 따라 하는 척하는 배우 겸 모델을 위한 노래를 작곡하는 건...그것 자체로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난 그런 걸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별로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우리가 끝도 없이, 힘들게 만들어낸 시도의 끝엔 아무것도 없었다.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 링컨 타운 자동차를 위한 광고 음악만이 우리가 받은 연락의 전부였다. 밴드로 여행 다닐 때 우리를 싣기 위해 왔다갔다 하던 류의 차를 취급하는 곳이었다. 낡지만 커다란 차가 있었고 뒤 트렁크는 짐을 실으며 사람 시체가 두 구 혹은 세 구까지도 들어갈 만큼 크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건 뉴욕에서의 일이었다. 트렁크 안의 시체들. 링컨 타운 자동차에서는 바람처럼 거절을 고했다. 난 내가 더이상 자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난다. 코카인과 위스키가 내 기분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봄을 가르며 휘청거렸다. 마치 펍 밖을 나서는 주정뱅이 마냥. 조금은 잃어버린 주말에 나오는 레이 밀렌드 같았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막 뉴욕을 떠났었다. 런던은 여전히 추웠다. 뉴욕이 춥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집에서 펍으로 향하기엔 충분한 변명거리가 되었다. 내 몸이 녹으며 난 다시 어딘가 아픈 듯 공허함을 느꼈고 집은 황량한 봄의 빛을 받으며 악귀가 들려 버려진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느끼던 감정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파편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원래라면 설거지가 되어 보관될 장소일 터였던 찬장에 더러운 식기들을 방치하기 시작했고 피자 박스 안에 집착하듯 무언가를 숨겨 넣었다. 그리고 문 밖의 모험을 나서는 일이 드물어졌다. 하워드 휴즈처럼 은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휴즈처럼 난 백만장자에 가깝지도 않았고 마음의 티끌을 다 벗겨낸 상태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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